글
[앵연] 다시 만나고싶거든
누군가라네
2015. 8. 17. 23:21
내기는 끝났다.
남은 것은 없었다.
가만 손에서 구슬을 굴려보았다. 데구르르, 데구르르. 소리도 없이 잘도 굴러간다. 이 구슬은 방금 전까지만해도 자신이 깨져 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질 뻔했음을 알고 있을까? 모르겠지. 모르겠지. 이 구슬이 무슨 생각이 있다고.
남은 것이 없었다.
가만 구슬을 바라보았다. 구슬 속에 피어있는 꽃은 여전히 시들기미도 보이지 않고 활짝 피어있었다. 내가 죽을 때 이 꽃도 시들까? 살며시 주먹을 쥐었다 폈다. 내 손은 비어있었다. 빈 손을 바라보다 탁탁 털었다.
정말 없는 걸까?
모래 위에 섰다. 발자국이 남았다. 모래가 버선에 묻었다. 바람이 불어왔다. 머리카락과 옷이 흩날린다. 뒤돌아 내기를 하던 섬을 바라보았다. 눈을 감았다. 시원한 바람이 온몸을 훑어온다. 다시 눈을 떴다. 다시 뒤돌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떠날 시간이다.
없다고 믿고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발걸음을 옮긴다. 모래 위에 남은 흔적은 지워지리라. 발에 붙은 추억과 미련은 언젠간 떨어지리라. 몸을 훑은 바람은 다른 바람에의해 잊혀지리라. 그리하면 남은 것은 없으리라. 이 섬에 남기고 가는 것도, 이 섬에서 가지고 나가는 것도 없으리라.
미련이 남았음을 인정하기 싫었다. 추억을 얻었음을 인정하기 싫었다. 유희가 더이상 유희가 아니게 되었음을 깨닫고싶지 않았다. 모든 것을 이 섬에 두고 떠나 다시 전처럼 아름다운 경치를 찾아 다니고싶었다. 이곳을 잊어버리고싶었다.
그럴 수 없을 거 같다.
만약 나에게 연락하고싶은 구미가 있거든 새를 한 마리 날려보내주오. 그 새의 입에 벚꽃을 물려 하늘높이 날려보내주오. 그렇다면 내 그 새를 보고 다른 새에게 편지를 쥐어 날려보내리다. 아니면 강에 벚꽃잎을 띄어 보내고 그곳에서 기다리십시오. 내 그 꽃잎을 보고 사슴에게 편지를 묶어 강 위로 보내오리다.
연이 닿는다면 다시 만나겠지요.
혹여나
나를 다시 만나고싶거든 까마귀에게 벚꽃을 물리고, 까마귀 다리에 편지를 묶어 하늘로 날려보내주십시오. 내 편지에 적힌 곳으로 반드시 찾아가리다.
나의 미련과
나의 추억과
나의 어리석음과
나의 감정을
나는 이 섬에 모두 버리고 떠나오겠사옵니다.
남은 것은 없었다.
가만 손에서 구슬을 굴려보았다. 데구르르, 데구르르. 소리도 없이 잘도 굴러간다. 이 구슬은 방금 전까지만해도 자신이 깨져 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질 뻔했음을 알고 있을까? 모르겠지. 모르겠지. 이 구슬이 무슨 생각이 있다고.
남은 것이 없었다.
가만 구슬을 바라보았다. 구슬 속에 피어있는 꽃은 여전히 시들기미도 보이지 않고 활짝 피어있었다. 내가 죽을 때 이 꽃도 시들까? 살며시 주먹을 쥐었다 폈다. 내 손은 비어있었다. 빈 손을 바라보다 탁탁 털었다.
정말 없는 걸까?
모래 위에 섰다. 발자국이 남았다. 모래가 버선에 묻었다. 바람이 불어왔다. 머리카락과 옷이 흩날린다. 뒤돌아 내기를 하던 섬을 바라보았다. 눈을 감았다. 시원한 바람이 온몸을 훑어온다. 다시 눈을 떴다. 다시 뒤돌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떠날 시간이다.
없다고 믿고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발걸음을 옮긴다. 모래 위에 남은 흔적은 지워지리라. 발에 붙은 추억과 미련은 언젠간 떨어지리라. 몸을 훑은 바람은 다른 바람에의해 잊혀지리라. 그리하면 남은 것은 없으리라. 이 섬에 남기고 가는 것도, 이 섬에서 가지고 나가는 것도 없으리라.
미련이 남았음을 인정하기 싫었다. 추억을 얻었음을 인정하기 싫었다. 유희가 더이상 유희가 아니게 되었음을 깨닫고싶지 않았다. 모든 것을 이 섬에 두고 떠나 다시 전처럼 아름다운 경치를 찾아 다니고싶었다. 이곳을 잊어버리고싶었다.
그럴 수 없을 거 같다.
만약 나에게 연락하고싶은 구미가 있거든 새를 한 마리 날려보내주오. 그 새의 입에 벚꽃을 물려 하늘높이 날려보내주오. 그렇다면 내 그 새를 보고 다른 새에게 편지를 쥐어 날려보내리다. 아니면 강에 벚꽃잎을 띄어 보내고 그곳에서 기다리십시오. 내 그 꽃잎을 보고 사슴에게 편지를 묶어 강 위로 보내오리다.
연이 닿는다면 다시 만나겠지요.
혹여나
나를 다시 만나고싶거든 까마귀에게 벚꽃을 물리고, 까마귀 다리에 편지를 묶어 하늘로 날려보내주십시오. 내 편지에 적힌 곳으로 반드시 찾아가리다.
나의 미련과
나의 추억과
나의 어리석음과
나의 감정을
나는 이 섬에 모두 버리고 떠나오겠사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