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카시마!”
오늘도 학교에는 연극부장이 연극부의 프린스를 부르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진다. 오늘도 땡땡이를 칠 생각에 여학생들과 어울리고 있던 연극부의 프린스, 카시마 유우는 연극부장 호리 마사유키의 부름에 여학생들과 아쉬운 이별의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꼭, 다시 만나러 갈 태니까. 기다려줘, 공주님.”
“꼭, 와 줘야해.”
언제나처럼.
“카, 시, 마!”
그녀의 옆구리는 그의 정강이에 채여 큰 타격을 입는다.
“정말, 선배도 너무 하시다니까요.”
연극부실로 향하는 길, 카시마가 불평을 털어놓는다. 그런 카시마를 노려보던 호리는 평소대로의 표정을 지으며 팔짱을 끼고 걸어간다. 카시마는 그런 호리를 가만 바라보며 삐죽이던 입술을 집어넣고는 작게 웃는다. 자신을 그렇게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리더라도 그것이 자신을 위한 것이란 걸 알고 있다. 비록 아프긴 무척이나 아프지만 말이다.
“맞다. 카시마, 혹시 주말에 시간 있냐?”
“선배, 그건 혹시.”
호리의 물음에 카시마는 눈을 빛냈다. 저 물음은 분명히 그 물음의 시작이었다. 다른 여학생들과 약속을 잡을 때, 또는 친구와 약속을 잡을 때 내뱉는 그 물음. 카시마는 두 손을 모아 가슴에 대었다. 이것이 꿈은 아니겠지. 주말에 선배와 약속이라니. 이런 좋은 기회를 카시마는 놓칠 수가 없었다.
“물론이죠!”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진 모르겠지만 일단 네가 생각하는 그건 아니야.”
카시마의 행동을 가만 지켜보던 호리가 한 소리 했다. 하지만 이미 귀가 저 하늘까지 떠올라버린 카시마에게 호리의 말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호리와 주말에 단 둘이 만나서 무엇을 하게 될지, 같이 영화를 보는 것일지 아니면 같이 연극 의상을 사러 가는 것인지, 연극 소품 제작에 필요한 물건을 사러 가려는 것인지 생각하기에 바빴다. 그리고 그것을 호리도 알고 있었다.
“카시마, 네가 자꾸 땡땡이를 치니까 이번 주말에 제대로 잡고 연습할거야.”
당연히 다른 부원들도 올 거고. 확실하게 말을 하고 나서야 카시마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 축 늘어졌다. 선배와 단 둘이 있는 게 아니라니. 실망 중에서도 대 실망이었다. 호리는 그런 카시마를 바라보다가 대본을 돌돌 말아 카시마의 머리를 톡 두드렸다. 평소처럼의 강한 스파이크가 아닌 가볍게 톡 치는 느낌에 카시마는 놀란 눈을 하고서 호리를 바라보았다.
“연습 안 빠지고 제대로 하면 같이 놀러가 줄 태니까.”
“선배! 저 열심히 할게요!”
금방 기운 차린다니까. 호리는 웃으면서 카시마를 바라보다가 손을 들어 카시마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래, 열심히 해라. 그리고 둘은 함께 연극부실로 들어갔다.
“카시마 너.”
“네, 선배?”
오늘 카시마의 기분은 최고의 끝을 달리고 있었다. 드디어 선배와 단 둘이서 놀러갈 수 있게 되었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이렇게 같이 놀러가기 위해서 근 일주일간을 얼마나 노력했던가. 카시마는 두 주먹을 꽉 쥐어 들어올렸다. 얼굴 표정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이렇게 할 수 있으면 평소에도 좀 하란 말이야.”
시작은 잔소리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오늘 하루 종일 선배와 함께 할 수 있었다. 그것도 연극부 연습이 아닌 개인적인 만남으로. 무엇부터 하는 게 좋을까? 어제 밤 내내 이런저런 계획을 세워두기는 했지만 제대로 결정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선배가 좋아할 만한 영화도 고민해보고, 좋아할 만한 장소도 고민했는데. 카시마는 두 주먹을 쥐어 들어 얼굴을 가리고 어깨를 움츠렸다.
“어이, 카시마?”
카시마가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고민하고 있는 사이에 호리는 이미 저만치 멀어져 카시마를 부르고 있었다. 카시마는 그제서야 다시 지상으로 돌아와 호리에게로 달려갔다. 호리는 다시 뒤돌아 걸어간다. 말은 없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호리는 앞장 서 걸어가며 흘끔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말이지, 눈에 띄는 얼굴이구나 싶었다.
“선배, 선배. 오늘은 어디 가실건가요?”
“글쎄. 넌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어?”
카시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리 선배가 좋아할 만한 곳을 골라가면 분명 선배와 즐겁게 놀 수 있겠지! 그래, 어제 그렇게 고민한 것은 다 선배를 위해서였다! 카시마는 호리의 손목을 잡아 이끌었다.
“저만 믿으세요, 선배!”
제가, 오늘 선배를 위해서!
카시마가 호리를 데리고 간 곳은 그야말로 분홍빛이 만발하는 귀여움이 가득한 디저트 카페였다. 벽면은 귀여운 봉재 인형으로 장식 되어있었고, 벽지도 전체적으로 파스텔톤이었다. 테이블을 덮은 식탁보는 새하얗고 레이스가 달려있었다. 그리고 주 손님은 여자이거나 커플들이었다.
“선배가 좋아하실만한 곳을 골라봤어요!”
선배는 여성스러운 것을 좋아하니까 분명 이 카페도 마음에 들어 하실 거야! 카시마는 칭찬해달라는 얼굴로 호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호리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카페에 들어올 때 까지만 해도 카시마도 귀여운 걸 좋아하는 구석이 있구나 생각했는데 자신이 좋아할 만한 곳이라니. 아니, 어쩌면 핑계를 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거기에까지 생각이 미친 호리는 별 말없이 카시마의 제안에 응했다.
“선배는 뭐로 드실래요? 저는 딸기 파르페.”
글쎄. 호리는 메뉴판을 열었다. 메뉴판 또한 카페처럼 파스텔톤인 거로도 부족해서 무척이나 화사하고 화려했다. 정말 카시마가 자신을 위해 골랐다고 하기엔 믿기지 않는 카페였지만 얼마 전에 자신을 놀렸던 것을 생각해보면 카시마가 자신을 위해 골랐을만 하다.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싶었다. 이번 주말 놀이는 상이었다. 한 번쯤은 어울려줘도 괜찮겠지.
“카시마, 앞으로도 연습에 잘 참여해봐.”
그러면 이렇게 또 같이 놀러 나와 줄 태니까. 이렇게 즐거워한다면 몇 번 더 어울려줄 생각은 있었다. 그러면서 저절로 연습 참여도도 올라간다면 더 좋은 거 아닌가. 나쁠 건 없었다. 물론 지금 기분이 높게 올라간 카시마에게 그 말은 들리지 않은 듯 했지만. 카시마는 그저 좋았다. 호리와 함께 이렇게 카페에 앉아 같이 파르페를 먹을 수 있다는 상황 자체가 기뻤다. 거기다 호리가 카페를 싫어하지 않는다! 한 발짝 더 가까워지고 호리를 이해 할 수 있게 된 기분이었다.
“선배.”
“음?”
카시마가 호리를 불렀다. 호리는 창밖을 보던 것에서 고개를 돌려 카시마를 바라보았다. 카시마는 환하게 웃었다.
“다음에 또 같이 놀러가죠!”
호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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