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Ne] 배움

2015. 8. 3. 17:25

가르친다는 것은 구원이요, 배운다는 것은 축복이니라.

 

“그리덤프씨?”

오랜만에 네오를 찾아온 그리덤프는 빈손이 아니었다. 요 며칠 보이지 않는다싶더니 이 근처를 돌아보면서 이것저것 주워온 모양이었다. 그가 들고 있는 보자기 안에는 책과 여러 가지 물건들이 가득했다. 그중에는 진화에 사용하는 돌같이 꽤 값이 나가는 돌도 있었다. 물론 그 가치는 그리덤프에게 있어서 ‘예쁜 돌’에 지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주워왔어.”

그리덤프는 모든 짐들을 내려놓고 하나하나 나열하기 시작했다. 그 물건들은 제법 많았는데 마당을 반의 반 정도 채울 정도였다. 그리덤프는 자기가 착지하느라 파놓은 구멍을 메꿔놓고 물건들 앞에 앉았다. 네오는 그런 그리덤프를 바라보다가 그리덤프의 옆에 앉아 그리덤프를 바라보았다.

“이건 저기 동쪽 마을에서 얻어 온 거야.”

그가 가르킨 것은 천둥의 돌이었다. 그 뒤로 그는 이건 어디서, 저건 어디서 얻어왔다며 자랑 아닌 자랑을 늘어놓았다. 네오는 그저 웃으면서 그 모습을 가만 지켜 볼 뿐이었다. 물건 소개는 한참이나 이어졌고, 그것이 끝나갈 무렵 그리덤프는 책을 한 권 들어 올려 네오에게 내밀었다. 이것은 분명 읽어달라는 부탁이었다.

“동화책이네요.”

네오는 그리덤프에게서 책을 받아들어 제목을 읽었다. 그리덤프는 바른 자세로 앉아서 이야기를 경청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가 잠들기 전에 동화책을 듣는 것 같아 귀엽게 느껴져 네오는 웃어버렸다. 네오는 책을 펼쳐 한 자 한 자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덤프는 네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가만히 듣고 있었다.

동화책은 그리 길지 않았다. 금방 이야기는 끝이 났고 책은 덮어졌다. 그리덤프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가만히 네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다고 한들 이야기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덤프는 알고 있었지만. 네오는 그런 그리덤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리덤프씨도 글을 배워보는 건 어때요?”

네오가 물었다. 그리덤프는 고개를 갸웃했다. 글이라면 전에 배워본 적이 있었다. 비록 얼마 가지도 못하고 가르쳐주던 포켓몬이 떠나버렸지만 말이다. 그리덤프는 고민에 빠졌다. 만약 글을 배운다면 그렇다면 스스로 책을 읽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네오에게 자신의 진심이 담긴 편지도 쓸 수 있다. 그리덤프는 네오와 눈을 마주쳤다. 네오는 웃었고, 그리덤프도 그를 따라 웃었다.

“네오가 가르쳐줘.”

네오가 가르쳐줬으면 좋겠어. 네오의 입에 쪽 입을 맞췄다 떼고 그리덤프가 말했다. 네오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곧 웃는 표정으로 바뀌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덤프는 웃으며 네오를 꼬옥 끌어안고 입을 맞췄다. 그렇게 한동안 입을 맞추고 있다 떨어졌다.

“그럼 내일부터 가르쳐 드릴게요.”

네오의 말에 그리덤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부터. 그리덤프는 기대되기 시작했다. 자신은 글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 사실 배울 생각을 해본적조차 없다. 자신은 그저 배틀을 하는 수많은 포켓몬 중 한 마리였고, 자신의 트레이너도 자신에게 글을 배우라 강요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글을 배우지 않아도 사는데 불편함은 없었다. 오히려 글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가는 길이 자신의 길이라는 생각으로 날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은 사랑하는 포켓몬이 생겼고,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글로 써서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글을 배우고 싶어졌다. 배울 것이다. 사랑하는 포켓몬에게, 그에게 전할 사랑의 말을.

해가 밝아오는 것은 금방이었다. 그리덤프는 오늘도 하늘높이 날아올라 사랑하는 이에게로 향한다. 그리고 그에게서 글을 배운다. 어떻게 읽는지, 쓰는지,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는지. 첫 시작은 가벼운 철자였다. 그리덤프는 열심히 그 철자를 따라 쓰고 읽어 머릿속에 기억해두었다. 네오는 그리덤프를 칭찬했다. 그리덤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무척이나 잘 한다고, 금방 글을 쓰게 될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네오 덕분이야.”

“그리덤프씨가 잘하시는 거에요.”

첫 번째 해가 밝아오는 게 금방이라면 당연히 두 번째도 금방이다. 오늘 배우는 것은 철자의 조합이었다. 철자를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서 그 소리가 달라지고, 그 소리가 어떻게 달라지냐에 따라서 단어의 뜻이 달라졌다. 그것이 무척이나 흥미로웠지만 그리덤프는 아직 어려워했고, 네오는 그런 그리덤프에게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익히면 된다고 조언해주었다. 그리덤프는 머리에 열이 오르는 것을 느끼다가 네오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네오는 그리덤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자, 힘내요. 그리덤프씨.”

“힘 낼 거야.”

널 위해서.

세 번째 해 또한 금방 찾아왔다. 오늘은 드디어 단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겨우 삼 일 만에 이 정도까지 온 것도 훌륭한 것이라고 네오는 칭찬했다. 그리덤프는 쑥스러워지는 기분에 괜한 날개만 퍼덕였다. 그리고 수많은 단어들을 외웠다. 자신이 전에 가져왔던 책은 동화책,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가 담겨있다고 했다. 나중엔 저 책을 읽어보며 글공부를 할 것이라고도 네오가 말해주었다. 그 외에도 많은 사물의 이름을 배웠다.

“네오는 네오가 이름인거고, 나는 그리덤프가 이름인 것처럼 많은 사물엔 이름이 있어. 다 외울 수 있을까?”

“천천히 배워가면 되는거니까 조급해하지 말아요, 그리덤프씨. 제가 하나하나 알려드릴게요.”

“난, 네오가 정말 좋아.”

네 번째 해가 떠올랐다. 그리덤프는 네오를 만나러 가기 전 근처 마을에 들러 종이와 펜을 얻었다. 이것으로 써야지 오래오래 남는다고 말 한 엑스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리덤프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종이에 글을 써서 잘 접어 네오에게로 향했다.

“네오.”

네오는 미리 나와 오늘 가르쳐줄 것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덤프는 그런 네오의 옆에 착지해 네오를 한 번 끌어안았다 놓아주고 네오의 손에 종이를 쥐어주었다. 그리고 잠시 얼굴을 붉히며 머뭇거리더니 날개를 펼쳐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멍하니 있던 네오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손에 쥐어진 종이를 펼쳐보았다.

그 안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사랑해, 네오’라고 적혀있었다.

“아.”

네오는 웃었다. 평소보다 더 환하게, 옅게나마 얼굴을 붉히며 네오는 웃었다. 그리고 그리덤프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그 종이를 고이 접어 자신의 주머니 안에 잘 넣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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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누군가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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