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화/앵연] 눈

2015. 8. 13. 11:29

그 눈은, 어쩌면 닮아 있었는지도 모른다.

 

“저기.”

숲에는 바람도 불지 않았다.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도 없었고, 하늘이 보이지도 않았다. 숲은 어두웠고, 바로 앞이라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환한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한 밤중과 다름없었다. 그 안에서 길을 잃은 한 아이는, 겁도 없이 그 숲에서 유일하게 보였던 이에게 말을 걸었다.

“이곳에서 나가려면.”

머리를 덮고 있던 겉옷이 내려간다. 감춰져있던 분홍빛 머리카락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순간 바람이 불었고, 벚꽃잎이 흩날렸다. 아이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바람에 의해 나뭇잎이 흔들려 소란스러운 소리를 낸다. 긴 겉옷이 바람에 흔들려 펄럭인다. 분홍빛 머리카락이 시선을 빼앗는다.

“그대.”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이는 급히 뒤로 물러났다. 위험하다. 그가 뒤돌아 아이를 바라보며 웃는다. 아이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재빨리 도망칠 수 있도록 자세를 잡았다. 바람이 멈췄다. 소란스러움도 사라졌다. 흩날리던 머리카락도 정돈되었다.

“그대는 어찌하여 이런 깊은 숲 속 까지 들어왔사옵니까?”

그가 묻는다. 아이는 자세를 낮추고 꽈악 주먹을 쥐었다. 명백하게 경계하고 있었다. 그는 웃었다. 손을 들어 소매로 입을 가리고 고개를 갸웃하며 웃었다. 그의 머리 위에 무언가 형체가 보이기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아이는 뒤로 몇 발짝 더 물러났다. 나무에 등이 부딪쳤다.

“왜 그리 무서워하시옵니까?”

그가 다가온다. 분명 걸어 다가오는 것이 분명한데, 마치 귀신이 다가오는 기분이었다. 아이는 나무에 등을 딱 붙이고서 최대한 주먹에 힘을 주었다. 죽는다, 죽을 것이다. 그렇다면 죽기 전에 먼저, 먼저? 아이는 나무에서 등을 떼고 빠르게 뛰어갔다.

“이런.”

그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웃었다. 한 번 강한 바람이 불었다 멈췄다. 분홍빛 귀를 쫑긋 세운 채 주위를 둘러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애초에 사람의 발길이 뜸한 숲이다. 지금 쫓아가면 분명 쉽게 잡아먹을 수 있을 터. 생긴 것도 나쁘진 않았는데.

“뭐, 나중을 기약할까.”

언젠간 또 다시 마주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음엔, 간보다 먼저 그 눈을 뽑아주리라. 그, 앵연은 웃으면서 숲길을 걸어갔다. 그 눈은 닮아 있었다. 무엇을 닮아있는 진 모르겠지만 분명 닮아있었다. 마음에 들었다. 아름다웠다. 가지고 싶어졌다.

“다음에 연이 닿기를.”

앵연은 작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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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누군가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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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카시마!”

오늘도 학교에는 연극부장이 연극부의 프린스를 부르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진다. 오늘도 땡땡이를 칠 생각에 여학생들과 어울리고 있던 연극부의 프린스, 카시마 유우는 연극부장 호리 마사유키의 부름에 여학생들과 아쉬운 이별의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꼭, 다시 만나러 갈 태니까. 기다려줘, 공주님.”

“꼭, 와 줘야해.”

언제나처럼.

“카, 시, 마!”

그녀의 옆구리는 그의 정강이에 채여 큰 타격을 입는다.

“정말, 선배도 너무 하시다니까요.”

연극부실로 향하는 길, 카시마가 불평을 털어놓는다. 그런 카시마를 노려보던 호리는 평소대로의 표정을 지으며 팔짱을 끼고 걸어간다. 카시마는 그런 호리를 가만 바라보며 삐죽이던 입술을 집어넣고는 작게 웃는다. 자신을 그렇게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리더라도 그것이 자신을 위한 것이란 걸 알고 있다. 비록 아프긴 무척이나 아프지만 말이다.

“맞다. 카시마, 혹시 주말에 시간 있냐?”

“선배, 그건 혹시.”

호리의 물음에 카시마는 눈을 빛냈다. 저 물음은 분명히 그 물음의 시작이었다. 다른 여학생들과 약속을 잡을 때, 또는 친구와 약속을 잡을 때 내뱉는 그 물음. 카시마는 두 손을 모아 가슴에 대었다. 이것이 꿈은 아니겠지. 주말에 선배와 약속이라니. 이런 좋은 기회를 카시마는 놓칠 수가 없었다.

“물론이죠!”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진 모르겠지만 일단 네가 생각하는 그건 아니야.”

카시마의 행동을 가만 지켜보던 호리가 한 소리 했다. 하지만 이미 귀가 저 하늘까지 떠올라버린 카시마에게 호리의 말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호리와 주말에 단 둘이 만나서 무엇을 하게 될지, 같이 영화를 보는 것일지 아니면 같이 연극 의상을 사러 가는 것인지, 연극 소품 제작에 필요한 물건을 사러 가려는 것인지 생각하기에 바빴다. 그리고 그것을 호리도 알고 있었다.

“카시마, 네가 자꾸 땡땡이를 치니까 이번 주말에 제대로 잡고 연습할거야.”

당연히 다른 부원들도 올 거고. 확실하게 말을 하고 나서야 카시마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 축 늘어졌다. 선배와 단 둘이 있는 게 아니라니. 실망 중에서도 대 실망이었다. 호리는 그런 카시마를 바라보다가 대본을 돌돌 말아 카시마의 머리를 톡 두드렸다. 평소처럼의 강한 스파이크가 아닌 가볍게 톡 치는 느낌에 카시마는 놀란 눈을 하고서 호리를 바라보았다.

“연습 안 빠지고 제대로 하면 같이 놀러가 줄 태니까.”

“선배! 저 열심히 할게요!”

금방 기운 차린다니까. 호리는 웃으면서 카시마를 바라보다가 손을 들어 카시마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래, 열심히 해라. 그리고 둘은 함께 연극부실로 들어갔다.

“카시마 너.”

“네, 선배?”

오늘 카시마의 기분은 최고의 끝을 달리고 있었다. 드디어 선배와 단 둘이서 놀러갈 수 있게 되었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이렇게 같이 놀러가기 위해서 근 일주일간을 얼마나 노력했던가. 카시마는 두 주먹을 꽉 쥐어 들어올렸다. 얼굴 표정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이렇게 할 수 있으면 평소에도 좀 하란 말이야.”

시작은 잔소리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오늘 하루 종일 선배와 함께 할 수 있었다. 그것도 연극부 연습이 아닌 개인적인 만남으로. 무엇부터 하는 게 좋을까? 어제 밤 내내 이런저런 계획을 세워두기는 했지만 제대로 결정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선배가 좋아할 만한 영화도 고민해보고, 좋아할 만한 장소도 고민했는데. 카시마는 두 주먹을 쥐어 들어 얼굴을 가리고 어깨를 움츠렸다.

“어이, 카시마?”

카시마가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고민하고 있는 사이에 호리는 이미 저만치 멀어져 카시마를 부르고 있었다. 카시마는 그제서야 다시 지상으로 돌아와 호리에게로 달려갔다. 호리는 다시 뒤돌아 걸어간다. 말은 없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호리는 앞장 서 걸어가며 흘끔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말이지, 눈에 띄는 얼굴이구나 싶었다.

“선배, 선배. 오늘은 어디 가실건가요?”

“글쎄. 넌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어?”

카시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리 선배가 좋아할 만한 곳을 골라가면 분명 선배와 즐겁게 놀 수 있겠지! 그래, 어제 그렇게 고민한 것은 다 선배를 위해서였다! 카시마는 호리의 손목을 잡아 이끌었다.

“저만 믿으세요, 선배!”

제가, 오늘 선배를 위해서!

카시마가 호리를 데리고 간 곳은 그야말로 분홍빛이 만발하는 귀여움이 가득한 디저트 카페였다. 벽면은 귀여운 봉재 인형으로 장식 되어있었고, 벽지도 전체적으로 파스텔톤이었다. 테이블을 덮은 식탁보는 새하얗고 레이스가 달려있었다. 그리고 주 손님은 여자이거나 커플들이었다.

“선배가 좋아하실만한 곳을 골라봤어요!”

선배는 여성스러운 것을 좋아하니까 분명 이 카페도 마음에 들어 하실 거야! 카시마는 칭찬해달라는 얼굴로 호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호리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카페에 들어올 때 까지만 해도 카시마도 귀여운 걸 좋아하는 구석이 있구나 생각했는데 자신이 좋아할 만한 곳이라니. 아니, 어쩌면 핑계를 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거기에까지 생각이 미친 호리는 별 말없이 카시마의 제안에 응했다.

“선배는 뭐로 드실래요? 저는 딸기 파르페.”

글쎄. 호리는 메뉴판을 열었다. 메뉴판 또한 카페처럼 파스텔톤인 거로도 부족해서 무척이나 화사하고 화려했다. 정말 카시마가 자신을 위해 골랐다고 하기엔 믿기지 않는 카페였지만 얼마 전에 자신을 놀렸던 것을 생각해보면 카시마가 자신을 위해 골랐을만 하다.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싶었다. 이번 주말 놀이는 상이었다. 한 번쯤은 어울려줘도 괜찮겠지.

“카시마, 앞으로도 연습에 잘 참여해봐.”

그러면 이렇게 또 같이 놀러 나와 줄 태니까. 이렇게 즐거워한다면 몇 번 더 어울려줄 생각은 있었다. 그러면서 저절로 연습 참여도도 올라간다면 더 좋은 거 아닌가. 나쁠 건 없었다. 물론 지금 기분이 높게 올라간 카시마에게 그 말은 들리지 않은 듯 했지만. 카시마는 그저 좋았다. 호리와 함께 이렇게 카페에 앉아 같이 파르페를 먹을 수 있다는 상황 자체가 기뻤다. 거기다 호리가 카페를 싫어하지 않는다! 한 발짝 더 가까워지고 호리를 이해 할 수 있게 된 기분이었다.

“선배.”

“음?”

카시마가 호리를 불렀다. 호리는 창밖을 보던 것에서 고개를 돌려 카시마를 바라보았다. 카시마는 환하게 웃었다.

“다음에 또 같이 놀러가죠!”

호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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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누군가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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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Ne] 배움

2015. 8. 3. 17:25

가르친다는 것은 구원이요, 배운다는 것은 축복이니라.

 

“그리덤프씨?”

오랜만에 네오를 찾아온 그리덤프는 빈손이 아니었다. 요 며칠 보이지 않는다싶더니 이 근처를 돌아보면서 이것저것 주워온 모양이었다. 그가 들고 있는 보자기 안에는 책과 여러 가지 물건들이 가득했다. 그중에는 진화에 사용하는 돌같이 꽤 값이 나가는 돌도 있었다. 물론 그 가치는 그리덤프에게 있어서 ‘예쁜 돌’에 지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주워왔어.”

그리덤프는 모든 짐들을 내려놓고 하나하나 나열하기 시작했다. 그 물건들은 제법 많았는데 마당을 반의 반 정도 채울 정도였다. 그리덤프는 자기가 착지하느라 파놓은 구멍을 메꿔놓고 물건들 앞에 앉았다. 네오는 그런 그리덤프를 바라보다가 그리덤프의 옆에 앉아 그리덤프를 바라보았다.

“이건 저기 동쪽 마을에서 얻어 온 거야.”

그가 가르킨 것은 천둥의 돌이었다. 그 뒤로 그는 이건 어디서, 저건 어디서 얻어왔다며 자랑 아닌 자랑을 늘어놓았다. 네오는 그저 웃으면서 그 모습을 가만 지켜 볼 뿐이었다. 물건 소개는 한참이나 이어졌고, 그것이 끝나갈 무렵 그리덤프는 책을 한 권 들어 올려 네오에게 내밀었다. 이것은 분명 읽어달라는 부탁이었다.

“동화책이네요.”

네오는 그리덤프에게서 책을 받아들어 제목을 읽었다. 그리덤프는 바른 자세로 앉아서 이야기를 경청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가 잠들기 전에 동화책을 듣는 것 같아 귀엽게 느껴져 네오는 웃어버렸다. 네오는 책을 펼쳐 한 자 한 자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덤프는 네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가만히 듣고 있었다.

동화책은 그리 길지 않았다. 금방 이야기는 끝이 났고 책은 덮어졌다. 그리덤프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가만히 네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다고 한들 이야기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덤프는 알고 있었지만. 네오는 그런 그리덤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리덤프씨도 글을 배워보는 건 어때요?”

네오가 물었다. 그리덤프는 고개를 갸웃했다. 글이라면 전에 배워본 적이 있었다. 비록 얼마 가지도 못하고 가르쳐주던 포켓몬이 떠나버렸지만 말이다. 그리덤프는 고민에 빠졌다. 만약 글을 배운다면 그렇다면 스스로 책을 읽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네오에게 자신의 진심이 담긴 편지도 쓸 수 있다. 그리덤프는 네오와 눈을 마주쳤다. 네오는 웃었고, 그리덤프도 그를 따라 웃었다.

“네오가 가르쳐줘.”

네오가 가르쳐줬으면 좋겠어. 네오의 입에 쪽 입을 맞췄다 떼고 그리덤프가 말했다. 네오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곧 웃는 표정으로 바뀌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덤프는 웃으며 네오를 꼬옥 끌어안고 입을 맞췄다. 그렇게 한동안 입을 맞추고 있다 떨어졌다.

“그럼 내일부터 가르쳐 드릴게요.”

네오의 말에 그리덤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부터. 그리덤프는 기대되기 시작했다. 자신은 글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 사실 배울 생각을 해본적조차 없다. 자신은 그저 배틀을 하는 수많은 포켓몬 중 한 마리였고, 자신의 트레이너도 자신에게 글을 배우라 강요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글을 배우지 않아도 사는데 불편함은 없었다. 오히려 글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가는 길이 자신의 길이라는 생각으로 날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은 사랑하는 포켓몬이 생겼고,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글로 써서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글을 배우고 싶어졌다. 배울 것이다. 사랑하는 포켓몬에게, 그에게 전할 사랑의 말을.

해가 밝아오는 것은 금방이었다. 그리덤프는 오늘도 하늘높이 날아올라 사랑하는 이에게로 향한다. 그리고 그에게서 글을 배운다. 어떻게 읽는지, 쓰는지,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는지. 첫 시작은 가벼운 철자였다. 그리덤프는 열심히 그 철자를 따라 쓰고 읽어 머릿속에 기억해두었다. 네오는 그리덤프를 칭찬했다. 그리덤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무척이나 잘 한다고, 금방 글을 쓰게 될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네오 덕분이야.”

“그리덤프씨가 잘하시는 거에요.”

첫 번째 해가 밝아오는 게 금방이라면 당연히 두 번째도 금방이다. 오늘 배우는 것은 철자의 조합이었다. 철자를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서 그 소리가 달라지고, 그 소리가 어떻게 달라지냐에 따라서 단어의 뜻이 달라졌다. 그것이 무척이나 흥미로웠지만 그리덤프는 아직 어려워했고, 네오는 그런 그리덤프에게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익히면 된다고 조언해주었다. 그리덤프는 머리에 열이 오르는 것을 느끼다가 네오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네오는 그리덤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자, 힘내요. 그리덤프씨.”

“힘 낼 거야.”

널 위해서.

세 번째 해 또한 금방 찾아왔다. 오늘은 드디어 단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겨우 삼 일 만에 이 정도까지 온 것도 훌륭한 것이라고 네오는 칭찬했다. 그리덤프는 쑥스러워지는 기분에 괜한 날개만 퍼덕였다. 그리고 수많은 단어들을 외웠다. 자신이 전에 가져왔던 책은 동화책,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가 담겨있다고 했다. 나중엔 저 책을 읽어보며 글공부를 할 것이라고도 네오가 말해주었다. 그 외에도 많은 사물의 이름을 배웠다.

“네오는 네오가 이름인거고, 나는 그리덤프가 이름인 것처럼 많은 사물엔 이름이 있어. 다 외울 수 있을까?”

“천천히 배워가면 되는거니까 조급해하지 말아요, 그리덤프씨. 제가 하나하나 알려드릴게요.”

“난, 네오가 정말 좋아.”

네 번째 해가 떠올랐다. 그리덤프는 네오를 만나러 가기 전 근처 마을에 들러 종이와 펜을 얻었다. 이것으로 써야지 오래오래 남는다고 말 한 엑스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리덤프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종이에 글을 써서 잘 접어 네오에게로 향했다.

“네오.”

네오는 미리 나와 오늘 가르쳐줄 것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덤프는 그런 네오의 옆에 착지해 네오를 한 번 끌어안았다 놓아주고 네오의 손에 종이를 쥐어주었다. 그리고 잠시 얼굴을 붉히며 머뭇거리더니 날개를 펼쳐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멍하니 있던 네오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손에 쥐어진 종이를 펼쳐보았다.

그 안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사랑해, 네오’라고 적혀있었다.

“아.”

네오는 웃었다. 평소보다 더 환하게, 옅게나마 얼굴을 붉히며 네오는 웃었다. 그리고 그리덤프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그 종이를 고이 접어 자신의 주머니 안에 잘 넣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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