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아둔다'에 해당되는 글 23건

  1. 2015.07.29 [근화/정적] 동행
  2. 2015.07.28 [근화] 한순간
  3. 2015.07.27 [근화/정적] 변화
  4. 2015.07.23 [2차/마비노기]영웅
  5. 2015.07.17 [자캐][근화]아해야
  6. 2015.07.16 [자캐] 니톤-비
  7. 2015.07.15 [리퀘]1차-조니뎁/일상
  8. 2015.07.15 [리퀘] 케마이사/앵스트
  9. 2015.07.09 [GNe] 현대AU/약(?)수위
  10. 2015.06.22 [GNe] 기분이 좋아

[근화/정적] 동행

2015. 7. 29. 13:12

변화를 받아들이면 모든 것이 편해진다는 건 개소리다.

 

[여기서 자는 건가?]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근화는 일단 잠을 잘 곳을 찾기 위해 마을 근처 폐가로 자리를 옮겼다. 잘 열리지 않는 문을 겨우겨우 열고서 안으로 들어가니 정적이 묻는다. 근화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뭐 남아있는 것 없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적은 문 근처에 자리 잡고 앉아서 가만히 근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낡은 집 치고는 기둥이 튼튼해서 무너질 걱정은 없어보였다. 천장도 구멍 없이 잘 막혀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살던 집이었던 모양이다. 아쉽게도 이불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기대도 안했지만. 근화는 적당히 자리 잡고 앉아서 정적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같이 다니실 겁니까?”

[거절을 안 한다면 못할 것도 없다.]

즉답이었다. 근화는 생각에 잠겼다. 솔직히 귀신 한 명 데리고 다닌다고 해서 자신에게 손해가 올 건 없었다. 단지 가끔 한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것 뿐. 어차피 다른 사람에겐 보이지 않을 태니까 상관없지 않을까? 무속인이나 불교인들은 좀 피해서 다녀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딱히 불편할 것은 없었다.

“좋습니다. 같이 다녀도 괜찮겠지요.”

[가끔 낚시터에 데려가줬으면 좋겠군.]

받아들임과 동시에 요구가 나왔다. 근화는 고개를 갸웃하며 정적을 바라보았다. 정적은 예의 그 표정으로 가만 근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근화는 저 표정을 보면 평온해졌다. 아무 감정도 들어있지 않은, 무심한 듯하지만 상대를 바로 보고 있다는 그런 생각이 드는 표정이었다. 그래, 하루 정도 낚시터를 가면 어떤가? 자신도 휴식이 필요했다.

“알겠습니다. 일단 오늘은 그만 자도록 하겠습니다.”

해는 이미 저문 지 오래였다. 하늘은 흐렸고, 바람은 서서히 힘을 실어가며 불고 있었다. 아마 오늘 밤은 비가 올 것이다. 근화는 바닥을 가볍게 쓸어내고 몸을 눕혔다. 말똥말똥 뜬 눈으로 정적을 가만 바라보았다. 정적은 문 쪽에 앉아서 생각에 잠겨있는 것 같았다. 사실, 읽을 수 없는 얼굴이라서 근화는 그가 생각에 잠긴 것인지 아니면 그냥 그러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서서히 눈이 감긴다. 눈이 반쯤 감겼을 때 아주 잠깐 정적의 모습이 달라졌다. 선분홍빛 피가 흐르는 모습. 심장은 심장이 있을 자리는 구멍이 나 있고, 온 몸에는 작은 생채기가 가득했다. 그가 죽은 모습을 발견했던 그때의 모습. 근화는 다시 눈을 떴다.

[안 자는 건가?]

정적이 물었다. 근화는 고개를 젓고는 눈을 감았다. 졸려서 헛것을 본 모양이었다. 금방 몸에서 힘이 빠졌다.

밖에서 비가 내리고 있다. 톡톡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 듯싶더니 곧 큰 소리를 내면서 몰아닥쳤다. 밖에서 잤으면 그대로 잠에서 깨어버렸으리라. 폐가 치고는 상태가 좋아서 비도 새지 않는다. 근화는 몸이 무거워졌음을 느꼈다. 흔히 있는 일이었다. 사람이 들지 않는 폐가는 그들의 놀이터가 되기에 딱 좋은 곳이었으니까. 근화는 계속 잠을 청하기로 했다.

귀신은 잠을 자지 않는다. 정적은 가만 밖을 내다보다가 근화를 바라보았다. 희끗한 무언가가 근화 위에서 근화를 내려다보는 듯싶더니 곧 근화를 누르고 얼굴을 가까이 하고 있었다. 정적은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근화는 별 변화 없이 계속 잠을 자고 있었다.

[뭘 하고 있는 건가?]

말을 걸었다. 희끗한 무언가는 곧 사람의 형체로 바뀌어 정적을 바라보다가 사라졌다. 그저 말을 건 것 뿐 이었는데. 그게 잘못이었나, 정적은 그냥 생각하기를 관뒀다.

근화는 간만에 편안한 잠을 자고서 일어났다. 간밤에 몸이 무거워졌던 적도 있는 거 같지만 금방 가벼워졌으니 딱히 신경 쓰진 않았다. 정적은 근화가 옷을 터는 것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밤에 있었던 일은 말하지 않아도 괜찮겠지.

[어디로 갈 것인가?]

“어디로든지요.”

발이 닿는 곳이라면. 근화는 정적의 질문에 가볍게 대답하고서 폐가 밖으로 나왔다. 바닥엔 물이 고여 있었고, 하늘은 여전히 흐렸다. 하지만 서서히 구름이 걷히고 있어 비가 더 올 것 같지는 않았다. 어딘가로 걸어가기엔 딱 좋은 날씨였다. 근화는 쭈욱 기지개를 펴고서 정적을 바라보았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나도 잘 부탁한다.]

독특한 동행의 첫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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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누군가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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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화] 한순간

2015. 7. 28. 23:21
모든 것은 한순간에 찾아오고, 죽음은 더더욱 그렇다.


강물은 그 날도 고요한듯 보였다. 그래서 강가에 자리잡고 앉아서 그날 밤은 그곳에서 보내기로 결정했다. 하늘에 구름이 좀 끼어있긴 했지만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았던 것도 한몫 했다. 배에서 소리가 난다. 며칠을 굶었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먹을만한 것은 보이지 않아서 그냥 강가에 몸을 뉘였다. 그리 작은 강은 아니지만 물흐르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눈을 감았다. 근처에서 벌레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새가 날개치는 소리도 들려온다. 꽤 큰 새였던듯 하다. 물에서 무언가가 튀어올랐다가 다시 들어가는 소리도 들렸다. 그 소리들이 멀어진다. 서서히 저 멀리로 사라진다.

차갑다. 차갑다. 몸이 차가워졌다. 이상하다. 이렇게 차가울리가 없는데. 물 흐르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천둥치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그리고 서서히 숨이 막혀온다. 눈을 떴다. 그리고 곧장 감았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몸도 움직이지 않는다. 휩쓸리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자고있는 사이에 큰비가 내렸나보다. 간만에 깊은 잠에빠져서 비가 내리는 것도 모르고 계속 자버렸다. 덕분에 순식간에 불어난 강물에 그대로 휩쓸린 듯했다. 몸이 굳어서 움직이지 않는다. 여태 살아있는 것이 용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상황이었다.

아, 이대로 죽는 건가.

몸에서 힘을뺐다. 물을 따라 몸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진다. 물위로 몸이 떠오르진 않는다. 이대로 죽는 걸까? 오히려 평온하다.

죽어도 괜찮은 건가?
아니, 살고싶어.
살고싶은데 이러고 있어도 돼?
아니, 하지만 아무것도 하기 싫어.
그렇담 죽고싶다는 거 아냐?
글쎄. 모르겠어.

아아, 모든 것은 한순간에. 모든 것은 순식간에. 죽음은 어느새 내 앞에.

아아, 이대로, 이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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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화/정적] 변화

2015. 7. 27. 11:26

일상의 변화는 사소한 듯 사소하지 않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날도 근화는 평소랑 다를 바 없이 크게 선 장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가벼운 발걸음과 섬세한 손짓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그들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도록 유인했다. 근화의 삿갓이 묵직해졌을 때쯤에 근화는 춤을 멈추고 사람들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그리고 삿갓을 챙겨 이만 돌아가려고 했다. 돌아가려고 했었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언뜻 보인 익숙한 복장, 이런 환한 대낮에 오히려 더 튀는 사람. 익숙한 얼굴. 하지만 곧 그 사람은 뒤돌아 걸어갔다. 근화는 그 뒤를 따라가며 손을 뻗었다.

“아.”

잡았다 생각했지만 잡히지 않는다. 근화는 멍하니 허공을 가른 자신의 손을 바라보다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는 사람들. 근화는 급히 돈을 주머니에 챙겨 넣고 삿갓을 쓰고서 그 자리를 벗어났다. 자신이 헛것을 본 것일까? 잘 못 본 거 아닐까? 착각한 거 아닐까? 그 사람은 이미, 그때. 그때 확실히.

[오랜만이다.]

인적이 드문 숲으로 나와 가만히 생각에 잠겨있던 근화의 옆에 불쑥 웬 사람이 튀어나오며 인사를 건넸다. 근화는 놀란 기색도 보이지 않고 고개를 돌려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아아,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니었구나. 후우, 길게 숨을 내쉬며 근화는 그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오랜만입니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잘 지냈다면 잘 지냈다.]

형식적인 인사가 오가고 잠시 말이 없어졌다. 근화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분명히 죽었다. 그는 분명히 죽었을 터인데, 심지어 죽은지도 꽤 오래되었다. 지금쯤이면 당연히 저승의 강을 건너 환생을 하든 뭘 하든 했을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떡하니 옆에 와있다. 더군다나 환한 대낮에 장에서 장을 구경하기까지 했다. 근화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이군.]

“그럼 그대는 이해가 가십니까?”

귀신이어도 다시는 볼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이렇게 떡하니 자신의 앞에 앉아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데. 근화는 괜히 가시 돋힌 말투로 톡 쏘아붙이고는 이마를 짚었던 손을 내렸다. 그 사람-정적은 예의 평소 그 표정으로 근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해 못 할 것도 없다.]

더군다나 저 말. 저 말. 근화는 일단 진정하기로 했다. 자신이 너무 피곤해서-요 근래 날씨가 좋지 않아 얼마 자지도 못했다- 헛것을 보고 듣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눈을 감고 심호흡을 다섯 번 정도 하고 난 뒤에 눈을 떴다. 헛것이 아니었다. 분명히 눈앞에 있었다. 이쯤 되면 인정 할 수밖에 없다.

“왜 구천에서 떠돌고 계십니까?”

저승으로 가지 않았다.

[이곳이 더 편하다.]

어련하시겠습니까. 근화는 갑자기 힘이 빠지는 기분이 들어서 나무에 등을 기대고 축 늘어졌다. 그래, 귀신 입장에서는 구천이 더 편하다 이 말이지. 그래, 그렇겠지. 고개를 끄덕이면서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정적을 바라본다. 그렇다면 일부러 찾아온 것인가, 아니면 그냥 둘러보다가 마주친 것인가. 후자일 가능성이 더 컸기에 딱히 묻지는 않았다.

[이제 뭘 할 건가?]

그가 물었다. 근화는 가만 정적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털었다.

“일단 지금은 다른 장이 서는 곳을 찾아 갈 생각입니다만 그 전에 할 일이 생겼습니다.”

정적이 일어선 근화를 올려다보다가 일어난다. 일어난다고 해도 되는 것일까? 자세히 보니 다리 쪽이 좀 흐릿한 거 같다. 근화는 사소한 것은 신경 쓰지 않기로 하고 다시 마을로 내려갔다. 그리고 오늘 번 돈으로 가벼운 주전부리와 술을 사와 정적을 불러 앉혔다.

“먼 길 오시는 동안 제대로 된 상도 못 받으셨을 태니 한 잔 받으십시오.”

근화는 술을 따르고 세 번 돌린 뒤에 정적의 앞에 내려놓았다. 정적은 근화와 술잔을 바라보다가 손을 뻗어 잔을 들었다. 근화는 가만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젓가락으로 전을 들어 정적의 입가에 가져갔다. 원래 주는 것이 아니라 젓가락을 놓는 것이었나 생각하던 사이에 정적이 전을 한 입 베어 물었다. 그것에 근화는 그냥 고민을 하지 않기로 했다. 어쨌거나 줄 수 있으면 된 거 아닌가.

“입에 맞으십니까?”

[나쁘지 않다.]

미묘한 대답. 근화는 가만 정적을 바라보다가 정적의 잔에 술을 따라 주고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몇 번 손이 오가고보니 사온 것들은 금방 동이 났다. 근화는 병이랑 잔을 챙기고 가만 정적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살아있지 않은 자와 눈이 마주친 것임에도 불구하고 별 다른 느낌이 들지 않는다. 어쩌면 익숙해져서 안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뭘 하실 것입니까?”

근화가 물었다.

[딱히 생각 해 둔 건 없다.]

정적이 대답했다. 그렇겠지. 귀신이 무얼 할까. 근화는 자신의 질문이 잘못 되었음을 깨달고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틀린 질문도 아니었으니 딱히 상관은 없으리라. 정적은 가만 근화를 바라보다가 손을 들어 근화의 어깨를 톡 두드렸다. 그 사소한 행동에 어깨가 무거워지고 한기를 느낀 근화는 급히 뒤로 물러나다 넘어졌다.

[괜찮나?]

괜찮을 리가. 근화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정적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털었다. 역시 귀신은 귀신이었다. 근화는 길게 숨을 내쉬고는 가만 정적을 바라보았다. 얼굴만 보면 보통 사람과 다를 바가 없는데. 죽을 당시 났었던 상처도 없어진 것 같다.

“저승으로 안 가십니까?”

근화가 물었다. 정적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정적의 뒤쪽에서 가벼운 바람이 불어왔다. 근화는 그 바람에서 한기를 느끼고는 자신의 몸을 감싸 안았다.

[괜찮다면.]

정적이 입을 열었다.

[같이 가도 되겠나?]

근화는 할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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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누군가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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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마비노기]영웅

2015. 7. 23. 10:38

“너는 영웅이잖아!”

그녀가 소리쳤다. 그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영웅이다. 다른 세계에서 이곳으로 온 여신의 축복을 통해 죽지 않는 존재. 모리안 여신을 구하고, 빛의 기사가 되고서 포워르들의 계획을 막아 에린을 수호한 존재. 드래곤의 감응자이자 그림자 세계로부터 에린을 구한 영웅이자 반신이자 브류나크의 소지자이자 키홀의 힘을 받은 자이자 수 많은 위기로부터 에린을 수호한 영웅. 나는 영웅이다.

“갈게.”

그런 내가 그들을 구하지 않으면 누가 구할 수 있을까? 그런 내가 그들을 위해 싸우지 않으면 누가 그들을 위해 싸워줄까? 그들의 생명은 무한하지 않다. 그들의 생명은 한 번 꺼지면 끝이다. 하지만 나는 밀레시안. 나는 죽지 않는 존재. 몇 번이고 다시 되살아날 수 있는 존재. 나의 죽음 한 번으로 다른 이들의 죽음을 막을 수 있다면 나는 얼마든지 죽었다가 살아날 수 있다.

“나는, 영웅이니까.”

나의 힘을 막는 무언가가 있다고 해도 나는 싸워야만 한다. 나는 영웅이니까.

“내가 아니면 누가 구하겠어.”

아무도 구할 수 없다. 그 누구도 구할 수 없다. 사실 나는.

“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이 공격을 해온다. 바람에 흔들리는 낙엽처럼 많은 병사들이 쓰러져간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검을 꺼내들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 내가 구해야만 한다. 한 손에는 가드실린더를 들고, 한 손에는 검을 든 채로 괴물들에게 달려간다. 두 발로 일어선 괴물의 가슴에 검을 박아 넣는다.

“영웅께서 와주셨어!”

“우린 살았어!”

“힘내세요! 영웅님!”

몸을 회전시키며 박아 넣은 검을 빼며 괴물을 날린다. 날아간 괴물은 곧장 일어나서 나에게로 달려와 앞발을 휘두른다. 급히 가드 실린더로 그 공격을 막고 검으로 몇 번 괴물을 내리쳤다. 느낌이 다르다. 다시 몇 번 더 내리쳤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내리쳤다. 느낌이 다르다. 이것이, 이것이.

“뭔가 이상하지 않아?”

누군가가 말했다.

“왜 괴물이 쓰러지지 않는 거지?”

누군가가 물었다.

“설마, 아닐 거야. 영웅님이잖아!”

누군가가 소리쳤다.

“영웅님이 우리를 구해주실 거야!”

누군가가 절규했다. 나는 구할 수 없다고 직감했다.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괴물이 앞발을 높게 들었다가 빠르게 내 머리를 내려찍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머리가 땅에 박히고, 나는 잠시 멀어졌던 의식을 겨우 바로 잡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에게 흥미를 잃은 괴물은 곧바로 다른 사람들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병사들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갑옷이 부숴지고, 검이 떨어지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아무도 구할 수 없다.

“살려주세요!”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만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영웅인데. 나는, 영웅인데!

“영웅님!”

절규에 가까운 부름이었다. 그 부름을 끝으로 병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눈앞에서 병사들이, 투아하 데 다난들이 찢겨져나간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의 손에 갈기갈기 찢겨져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게 되어버렸다. 간신히 검을 잡아들고 몸을 일으켰다. 후두둑, 몸에서 돌조각들이 떨어진다. 다시 검을 강하게 쥐고서 괴물에게 달려가 등에 검을 꽂았다. 괴물이 뒤돌아본다.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내 몸은 하늘로 떠올랐다가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으아아악!”

비명소리가 울려 퍼진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숨이 차오른다. 눈앞이 흐릿해진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는 아무도 구할 수 없다. 눈물이 흐른다. 뜨겁다. 피 인가?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해. 나는 누구도 구하지 못해. 난, 영웅이 아니야. 나는 여태 아무도 구하지 못했어. 정작 내가 구했어야 하는 이들은 모두 죽었어. 다신 돌아오지 않아.

“밀레시안님!”

아득히 멀어져가는 정신 속에서 빛과 같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아, 알터.

“밀레시안님, 이제 괜찮아요!”

그의 괜찮다는 목소리에 흐릿해졌던 눈앞이 다시 평소대로 돌아온다. 밝은 초록색의 눈동자가 나를 내려보고있다. 그 눈에는 경멸도, 한심함도, 비조도 담겨있지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순수한 동경의 눈빛으로, 존경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손을 뻗어 알터의 뺨을 쓰다듬다가 꽈악 끌어안았다.

“밀레시안님, 얘기는 이따 하도록 해요.”

팔이 풀리고, 그 아이는 검을 들고서 괴물들에게 달려간다. 아이와 두 기사의 손에 괴물들은 빠르게 쓰려져간다.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미 많은 병사들이 죽었다. 이미 많은 병사들이 크게 다쳤다. 그들은 나를, 나를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두 손을 모아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였다. 나는 아무도 지키지 못했다. 아무도-.

“으아, 으아아, 아아아, 아아아아, 아아아아!”

병사들을 지키지 못했다. 영웅이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괴물에게 당해서 쓰러졌다. 결국 괴물을 쓰러트리는 건 나를 존경하는 아이. 나는 영웅이 아니다. 나는 아무도 지키지 못하는 힘없는 밀레시안일 뿐이다. 그들이 나를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나는.

“밀레시안님!”

배를 뚫은 검의 아픔은 느껴지지만 죽음의 기운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차라리 죽고 싶다. 차라리.

“당신은, 당신은 제 영웅이에요!”

아이가 소리친다. 아아, 알터. 차라리 네가 영웅이었고, 차라리 내가 널 존경했더라면 좋았을 탠데. 그 자리에 쓰러지며 알터를 바라보면서 웃었다. 그런 표정 짓지마, 알터. 어차피 죽지 않아. 조금만, 아주 조금만 자고 일어나면 금방 다시 회복되어 있을 거야. 아무도 지키지 못하는 영웅은 차라리 잠들어있는 게 나을 태니까.

나는 아무도 지키지 못하는 영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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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캐][근화]아해야

2015. 7. 17. 11:58

아해야.

천장으로 손을 뻗으니 누군가가 손을 잡아온다. 눈을 뜨고서 누군가를 바라보지만 눈앞이 흐릿해 잘 보이지 않는다. 만약 내 손을 잡아준 아이가, 내 손을 잡은 이가 그 아이라면 좋을 탠데.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그 아이라면 적어도 살아있는 모습은 보고 가는구나 하고 기뻐할 탠데. 눈꺼풀이 무거워 다시 눈을 감고, 그는 깊은 잠에 빠지기 전 마지막 정리를 한다.

그날도 별 다를 바 없는 날이었다. 궁에서 나온 지 일 년, 아들은 장성해서 궁으로 들어갔고 며늘아가는 똑똑해서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아도 척척 해내었다. 그렇지만 그는 어딘가 부족함을 느꼈다. 그것은 아이. 며늘아가와 아들 사이에선 몇 년 째 아이가 생기지 않고 있었다. 그것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것은 아니나 조금 불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며늘아가의 잘못만은 아니기에 꾸짖지는 못하고, 아들도 별 다른 말이 없으니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그렇게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어느 날, 대문 앞에 아이가 떨어졌다.

“배, 배가, 배가 고픕니다. 살려, 살려주세요!”

10살도 안되어 보이는 그 아이는 더러운 얼굴과 산발한 머리카락을 한 채 대문 앞에 엎드려 우리를 올려다보았다. 아이의 갈색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생기를 잃을 것 같았고, 말라비틀어진 손은 살짝만 건드려도 부러질 것 같았다. 그 아이가 누구의 보살핌도 받지 못한다는 것이 한 눈에 들어올 정도의 몰골이었다. 그는 아이에게서 나는 냄새와 더러운 생김새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아이를 내치지는 못했다.

“안으로 들여보내 밥을 주고, 씻기거라.”

불안해하던 며늘아가는 그의 말에 기뻐하며 서둘러 아이를 안으로 들였다. 아마 저토록 어린 아이가 죽어가는 것에 약한 마음이 동한 것이겠지. 그는 길게 숨을 내쉬며 고개를 젓고 방으로 들어 가버렸다.

아이는 역마살이라도 낀 것인지 배고픔을 해결하자마자 곧바로 떠나려했다. 그것을 며늘아가는 붙잡았고, 아이를 설득해달라는 듯 그를 불렀다. 그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밖으로 나왔고, 떠나려는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서 다시 뒤돌아 가려했다.

“거, 역마살이라도 끼었나. 하루 정도는 자고 가거라.”

아이는 내딛으려던 걸음을 다시 되돌리고 의심이 가득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으로 그는 알 수 있었다. 아이는, 아무도 믿을 수 없는 곳에서 살아왔다. 아무도, 그 어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곳. 남자도, 여자도, 노인도, 같은 또래의 아이도 믿어서는 안 되는 곳.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몇 번 헛기침을 했다.

“순수한 호의일 뿐이니 듣거라.”

아이는 여전히 믿지 않았지만 자신을 향해 꼭 자고가라고 말하는 며늘아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며늘아가는 기뻐했고, 그는 좀 나아진 기분으로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그 아가와의 만남은, 이처럼 한순간에 다가온 소낙비와 같았다. 예상치 못하게 갑자기 찾아와 한동안 깊은 물웅덩이의 형태로 남아있게 된 것이었다.

그 물웅덩이는 처음엔 무척이나 탁해보였다.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그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이는 그가 방밖으로 나오면 마루에 앉아서 잘 놀고 있다가도 그를 노려보며 방안으로 들어간다. 며늘아가와 함께 밥을 먹고자 하면 며늘아가의 뒤에 딱 붙어서 그를 노려본다. 며늘아가가 일을 보러 잠시 밖으로 나가 둘만 남게 되면 아이는 방에서 나오질 않는다. 그는 아이와 제대로 대화를 할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다 한 달에 이틀, 며늘아가가 친정으로 가는 날이 되었다. 며늘아가는 자신 대신에 식사를 챙겨줄 이가 누구인지 그에게 알려주고, 곧잘 다녀오겠다 하고서 집을 나섰다. 자고 있었던 아이는 일어나자마자 며늘아가를 찾았고, 없다는 것을 눈치채자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거, 불안해하지 말거라. 내가 사람 잡아먹는 괴짐승도 아니고.”

그는 그간의 감정을 담아 말했다. 아이는 그런 그를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슬그머니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아이는 여전히 그를 경계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다가오더니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한 발짝만 움직이면 닿을 거리지만 아이는 그 거리를 최소한의 경계로 잡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는 아이를 가만 바라보다가 자신의 옆을 툭툭 두드렸다. 아이는 그 손짓에 반응하긴 했지만 다가가진 않았다. 그는 아이를 더 가까이 오게 하는 것은 관두고 아이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이름이 무엇이냐?”

“백근화.”

이름을 물었다.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곧 다시 폈다. 아이다. 아직 어린 아이다.

“몇 살이냐?”

나이를 물었다. 아이는 머뭇거리면서 대답하지 못하다가 돌로 바닥에 작대기를 그었다. 하나, 둘, 셋…열 셋. 아이의 나이는 그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았다. 작고 왜소한 몸은 보통의 13살 남자아이보다 훨씬 더 작았다. 그래서 많아봤자 10살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이는 그런 그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갸웃하다가 바닥에 낙서를 하기 시작했다.

“무얼 하는 것이냐?”

그는 물었다. 하지만 아이는 대답하지 않고 꽃을 그려냈다. 그 꽃은 그도 한 번은 본 적이 있는 꽃이었다. 분명 이 집 어딘가에도 심어져있을 그 꽃이었다. 아이는 한참 그 꽃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가만 아이를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는 움찔 하더니 뒤로 물러났다. 그런 아이의 반응에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을 사나운 산짐승 보듯이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례하게 행동 할 거라면 이 집에서 썩 나가거라!”

그는 크게 소리쳤다. 아이는 크게 몸을 떨더니 곧 울먹이는 얼굴이 되었다. 그는 그런 아이를 바라보다가 휙 뒤돌아 방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 앉아서 그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아이를 들이라고 한 것도 자신이고, 아이가 계속 여기 있어도 좋다고 한 것도 자신이다. 며늘아가의 부탁이 있었기도 했지만 자신도 생각 없이 허락한 것은 아니었다. 충동적으로 소리쳤다. 어린 아이가, 그것도 험한 곳에서 자라왔을 아이가 무례한 행동이 무엇이고 어른을 대하는 방법을 어찌 알겠는가. 나이가 들어서 속이 좁아진 것인지,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

“근화 있느냐?”

그는 조심히 문을 열어 마당을 보았다. 다행히 아이는 아직 나가지 않았고, 연못 앞에서 작은 몸을 웅크리고 앉아 연못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가만 아이를 바라보다가 방밖으로 나가 아이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가 오는 소리를 들은 것인지 아이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가만 아이를 바라보다가 조심히 손을 뻗었다. 아이는 다가오는 손이 무서운 것인지 뒤로 물러났다. 그는 멈추지 않고 손을 뻗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작은 아이의 머리는 한손으로도 충분히 감쌀 수 있을 정도로 작았다.

“괜찮다. 여기 있어도 된다.”

그는 부드럽게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는 피하지 않고 얌전히 그의 손길을 받았다. 그는 길에서 뛰어놀던 고양이를 길들인 듯한 느낌을 받았다. 손을 내리고 가만히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도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갈색 눈은 처음 만났을 때보다 생기가 돌았다. 피부도 살구빛으로 예쁘장해졌다. 머릿결은 아직 좋지 못한 듯 보였지만 처음 왔을 때보단 많이 가지런해졌다. 며늘아가가 잘 돌봐주었다는 것이 느껴졌다.

“넌 어디서 왔느냐?”

그가 물었다. 아이는 머뭇거리며 대답을 못하다 손가락으로 먼 곳을 가리켰다. 정확하게 그곳이 어디인지 그는 감도 잡히지 않았지만 무척이나 먼 곳이리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는 손을 내리고 가만 그를 올려다본다. 그는 가만히 아이를 바라보다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당신은.”

그리고 그 고민은 아이의 질문에 의해서 쓸 대 없어져버렸다.

“무슨 일을 해?”

아이가 물었다. 그는 아이를 바라보다가 자신이 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궁에서 무용수를 기르고, 왕을 위한 춤을 출 자들을 교육시키는 것. 그것이 자신이 했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이가 들어 더 이상 그 일을 하지 못하고, 이곳으로 와서 그저 지나가는 나날을 보내고 있을 뿐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아이의 눈빛이 바뀌었음을 느꼈다. 아이는 눈을 빛내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그는 직감했다.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가르쳐주십시오!”

아이는 곧바로 그의 옷을 잡고 늘어졌다. 어른에게 올림말을 할 줄도 모르는 아이인 줄 알았더니 할 줄 알았다. 그것도 제법 무겁고, 정중한 투였다. 아이는 그동안 연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순진하고, 어린 아이가 아니면 내쫓을 것이라 생각했을 거라며 그는 혀를 찼다. 그리고 겨우겨우 아이를 옷에서 떼어놓았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니 아무리 매달려도 소용없다!”

“가르쳐주십시오!”

하지만 유일하게 아이가 연기가 아닌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은 앞뒤 분간하지 않고 달려드는 점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도 사람 얼굴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살려달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그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며 이 세상엔 아직 자신을 속이는 이도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리고 이 아이가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것도.

“가르쳐주십시오!”

아이는 다시 그의 옷에 매달렸다. 작고 가벼운 아이였지만 나이가 있는 그에겐 제법 무거웠다. 거기다가 그런 몸에 비해서 손힘이 무척이나 세다. 그는 몇 번이고 아이를 떼어내려고 노력했지만 아이는 떨어지지 않았다. 옷에 거의 묻히다시피 하며 손으로 옷을 비틀어 쥐고 매달려 있었다. 그는 점점 지쳐가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 가다간 자신이 아이에게 못 이기고 쓰러질 판이었다. 그는 떼어내려는 것을 멈추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그의 손길이 사라지자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가르쳐주십시오!”

그는 길게 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는 절대로 안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네 실력을 나에게 보여 주거라.”

그렇기에 그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자신의 앞에서 춤을 추고, 그 실력이 자신의 마음에 들면 가르쳐주겠다는 것이었다. 아이는 바로 받아들였다. 자신에 가득 찬 눈빛이었다. 그는 그런 아이를 바라보며 속으로 비소를 지었다. 저렇게 어리고 마른 아이가, 거기다가 본 춤이라고는 광대들의 춤이 전부일 아이가 춘다면 무엇을 추겠냐는 것이었다. 이번에 확실히 쐐기를 박아 다시는 가르쳐 달란 말을 꺼내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그럴 생각이었다.

아이는 악기 소리 하나 없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표정은 진지했고, 손끝은 섬세했다. 눈빛은 즐거움이 가득했고, 발걸음은 가벼웠다. 아이의 이름답게 마치 한 송이의 꽃이 바람에 흔들려 춤을 추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는 감탄했다. 저렇게 어리고 작은 아이가 저 정도 수준의 실력을 갖추기란 쉽지 않았다. 저것은 분명 타고난 재능, 그리고 앞으로도 더 훌륭하게 기를 수 있는 재능이었다.

“어떻습니까?”

끝낸 아이가 물었다. 그는 잠시 대답하지 않고 심호흡을 했다. 가르쳐주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기회는 흔히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나라 최고의 무용수를 길러낼 수 있는 기회는 앞으론 다신 없을 것이다. 그는 결심했다.

“가르쳐주겠다.”

이 아이를 자신이 죽기 전에 이 나라 최고의 무용수로 길러보겠노라고.

아이의 재능은 그야말로 훌륭했다. 그리고 그는 춤을 가르치면서 아이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는 예의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어떻게 사람을 대해야하는지, 어떻게 말해야 상대의 기분을 나쁘지 않게 하는지. 그리고 아이는 글도 읽을 줄 알았다. 언문이라 알려진 글자를 읽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그나마라도 읽는 것이 어디인가? 또한 아이는 시를 지을 줄도 알았다. 그렇게 수준 높은 시는 아니었지만 이를 통해 아이가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네 부모는 누구냐?”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더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제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다 하셨고, 어머니는 저 먼 고을의 관기셨습니다.”

아이는 관기의 아들이었지만 그 사실이 기록되지 않아 태어났지만 태어나지 않은, 살아있지만 살아있지 않은 아이였다. 관기의 아이임에도 관노가 되지 않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인지라, 그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에게는 그야말로 천운이었노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 덕에 자신이 이리 훌륭한 재능을 가진 아이를 가르칠 수 있게 된 것이니까.

아이의 재능은 훌륭한 정도를 넘어 무서울 정도였다. 아이의 습득 능력은 여태 가르친 그 누구보다 뛰어났고, 그것을 응용하는 능력 또한 뛰어났다. 한 가지 무용을 추는 것도 잘하지만 두 가지 이상의 무용을 섞어 자연스럽게 잇는 것도 가능했다. 궁에서 추는 무용과 기생이 추는 무용이 이토록 잘 어울릴 수 있음을 그는 아이를 통해 배웠다.

“근화야, 이리 와 보거라.”

하지만 그만큼 그는 두려워졌다. 아이에게 큰 문제가 생길까봐, 아이가 누군가의 시기를 받아 위험한 일에 휘말릴까봐.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자신은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다는 것이. 그는 두려웠다.

“내 말 잘 듣거라.”

아이와 그는 눈을 마주쳤다. 아이의 눈엔 생기가 감돌았고, 잘 먹은 덕분에 살이 올라 몸도 보기 좋아졌다. 머릿결은 무척이나 부드러워졌고, 머리를 묶는 것도 상당히 가지런해졌다. 옷도 단정하게 잘 차려 입었고, 예의도 몸에 익숙해졌다. 말투는 부드러워졌고, 웃는 표정을 지을 줄도 알게 되었다. 아이는 고작 몇 달 사이에 크게 성장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에게 아이는 아이였다.

“남의 무용을 따라하는 것은 그 누구든 할 수 있다. 그러니 사람들에게 너를 기억하게 하고 싶다면 너만의 춤을 추어라. 너만의 존재 가치를 만들어 이 세상을 살아 나가거라.”

아이는 꾸벅 그에게 절을 했다. 그는 가만 그런 아이를 바라보다가 나가보라 말하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이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아이에게 좀 더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를 다른 곳으로 보내기로 결정했지만 욕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이를 좀 더 자신의 품안에 두고 싶다. 아이가 자신의 손자였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아이가 스스로 살아나가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선 더 많은 것을 보아야한다.

자신이 이 나라 최고의 무용수로 만들려고 했지만 자신이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렇기에 아이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는 다시 한 번 되새기며 붓을 들었다.

“스승님.”

며칠이 지났다. 아이는 혼자 연습하는 시간이 늘었고, 그는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날은 바라보기만 하는 것조차 하지 않았다. 그것을 이상하게 여긴 아이는 조심스럽게 그의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인지 눈을 감고 있었다. 아이는 불안한 마음에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의 이마를 짚어보았다. 뜨거웠다.

아이는 급히 방을 나가 며늘아가를 불러왔다. 며늘아가는 그의 상태를 살피고 급히 의원을 불러왔다. 의원은 여러 가지를 살펴보고 말했다. 얼마 전에 찾아왔던 마을 주민과 같은 증상을 보이고 있다며 역병일 가능성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며늘아가는 알았다고 말을 하긴 했지만 간호를 하기 위해선 가까이 다가가야만 했다.

“제가 하겠습니다.”

불안해하는 며늘아가를 바라보며 아이가 말했다. 며늘아가는 그런 아이를 말렸지만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이 해야만 한다. 자신밖에 못한다.

“저는 괜찮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아이는 정성을 다해 그를 돌보았다. 역병인지 아닌지 확실히 알 수는 없었기에 며늘아가는 식사와 물을 가져와 방 문 앞에 놓는 것 이상으론 접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근화는 방에서 잘 나가지도 않은 채 언제나 그의 곁에 있었다. 자신의 아버지 같은 사람이다. 죽을 수도 있었던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다. 그러니 이번엔 내가, 내가.

“근화야.”

한 밤중에 깨어난 그는 잠들어있는 아이를 부르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열로 인해서 깨어있는지 잠들어있는지 모를 상황 내내 아이가 옆에서 돌보아주었다는 것만큼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제 그에게 아이는 자신의 손자나 다름없었다. 그 누구에게도 보내고 싶지 않은, 언제나 곁에 두고 싶은 그런 아이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자신은 아이를 보내야만 한다.

“다행입니다, 다시 건강해지셔서.”

며칠이 지나 그는 건강을 되찾았다. 아이는 다시 건강해진 그를 바라보며 기뻐했다. 다시 춤을 가르쳐달라 웃으며 말하는 아이를 향해, 그는 종이를 한 장 내밀었다. 아이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종이를 받아들었다. 그는 길게 숨을 내쉬고 아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너에게 가르칠 것은 더 이상 없다. 그리고 너는 나에게 보일 것이 더 이상 없다.”

그러니 너는 이 밖으로 나가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것을 배우거라. 그 종이는 저 아래 고을에 살고 있는 나의 제자에게 쓰는 추천서다. 그걸 보여주면 너에게 나에게 배운 것 외에 것들을 가르쳐 줄 것이야.

긴 말을 끝내고 그는 입을 다물었다. 이 이상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한 아이를 떠나보내는 일은 많이 있었다. 자신의 밑에서 벗어나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하여 가는 경우야 수없이도 많았다. 하지만 이 아이만큼 그 어떤 말도 더 이상 해줄 수 없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아이 또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음이 분명하다. 아이는 그저 감사인사와 함께 절을 올릴 뿐이었다. 그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처음 왔던 때보다 훨씬 더 키가 크고, 살이 올랐다. 머릿결은 그 누구보다 부드러워졌고, 가볍게 짓고 있는 미소는 그 어떤 아이보다 사랑스러웠다.

“나는.”

그는 겨우 입을 열었다.

“널 단순한 제자가 아닌 손자로 생각했다.”

아이는 웃었다.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었다. 활짝 핀 무궁화처럼.

“다시, 만나자구나.”

다음에, 다시 만나자구나.

그렇게 약속했다. 그렇게 아이는 떠나갔다. 그 뒤로 그 어떤 소식도 듣지 못했다. 편지도 없었고, 아이가 찾아오는 일도 없었다. 어디서 나쁜 짓을 당한 것은 아닌지, 누군가에게 붙잡혀 간 것은 아닌지. 밥을 굶어 또 쓰려져있는 것은 아닌지, 산짐승에게 쫓기다 절벽에 떨어진 것은 아닌지. 그는 걱정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걱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라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무사한 아이의 얼굴을, 환하게 웃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 싶다고.

“아해야.”

나에게 그 웃음을 보여주렴. 나에게 네 춤을 보여주렴. 나에게로 다가와 안겨주렴. 아해야, 보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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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캐] 니톤-비

2015. 7. 16. 20:16


투둑, 툭.
쏟아지기 시작했다. 가만 하늘을 바라보던 니톤은 자신의 옷이 젖는 것을 뒤늦게 눈치채고서 급히 자리를 옮겼다. 한두방울 내리는 것 같았던 비는 곧바로 거세게 쏟아졌다. 아무래도 가볍게 지나갈 생각은 없는 듯 보였다. 근처 카페로 몸을 숨긴 니톤은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다가 지갑을 열었다. 10달러 지폐 한 장.
니톤은 흘끔 카운터를 보다가 일단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비는 분명 오래 내릴 것이리라. 물방울이 묻은 머리카락을 꼬며 니톤은 고민에 빠졌다. 지갑에 들어있는 돈은 고작 10달러 지폐 한 장. 그리고 자신은 얼마전 도박판에서 번 돈을 모두 꺼내 써 버렸다. 눈에 띄는 행동은 하고싶지 않고, 그렇다고 그냥 나가자니 인간들에게 뒷담을 듣고싶지 않다.

"어쩔까."

작게 중얼거리며 니톤은 머리카락을 꼬던 손을 아래로 내리고 다시 카운터를 바라봤다.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니톤은 가볍게 웃곤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밝았던 밖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길바닥엔 물웅덩이가 고였고, 미처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이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중에는 카페로 들어오는 사람도 있었다.

"후우."

니톤은 한숨을 내쉬곤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향했다. 비는 앞으로 몇시간은 더 내릴 것이다. 자신은 우산이 없고, 이 근처엔 우산을 살 만한 곳도 없다. 비를 맞기는 싫고, 인간들처럼 꼴사납게 뛰어다니고 싶지도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장신구를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 돈이야 벌면 된다. 자신은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까. 니톤은 속으로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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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퀘]1차-조니뎁/일상

2015. 7. 15. 20:43



여느 때와 같은 일상이라면 일상이었다. 콜린과 존은 같이 뒹굴며 놀고 있었고, 덴은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있었다. 한참 콜린과 놀던 존은 고개를 들어 덴을 바라보았다. 소파 밑에서 올려다본 책을 읽는 덴은 존에게 있어서 그 어느것보다 멋지다고 느껴졌다.

"허니-."

존은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 위로 올라가 덴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덴은 그런 존에 익숙한듯 책만 읽고있었다. 존은 그런 덴을 바라보다가 다시 그를 불렀다. 그제서야 그는 책을 덮어 내려놓았지만 바로 앞에 있는 잔을 들어 커피를 마셨을 뿐 대답은 하지 않았다.

"허니, 정말 멋진 거 알아?"

존이 물었다. 덴은 잔을 내려놓고서 다시 책을 들어올렸다. 아까 전에 읽던 페이지를 다시 펼치고 글을 읽어내려갔다. 존은 그런 덴의 반응에 익숙한듯 했지만 그 반응에 심통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존은 몸을 일으켜 앉아 이번엔 덴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정말 멋진 거 알아? 허니-."

"대낮부터 무슨 헛소리야?"

반응했다. 존은 입꼬리를 올려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헛소리 아닌데."

"방금 했잖아."

아닌데. 어느새 다가온 콜린이 존의 다리 위에 얼굴을 올려놓고 존을 올려다본다. 골든 리트리버 특유의 표정에 존은 손을 뻗어 콜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잠시 침묵. 덴은 책을 읽고있고, 존은 그런 덴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고있으며 콜린은 덴의 다리 위에 얼굴을 올린채 쓰다듬받고 있었다.

"허니, 데이트하자."

존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에도 반응이 없으리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덴은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존과 콜린이 같은 시선으로 덴을 바라본다. 덴은 책을 책장에 꽂아놓고, 잔이 빈 것을 확인 한 뒤에 존을 바라보았다.

"데이트하자."

정말?

"난 나랑, 넌 너랑."

그럼 그렇지. 그 말을 끝으로 덴은 다른 책을 꺼내들고서 다시 소파에 앉았다. 그가 일어난 것은 그저 책을 다 읽었기 때문이었음을 알아챈 존은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언제나 처럼의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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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메사부로."

밖에는 비가 쏟아진다. 언제나처럼 불운의 효과겠지. 이사쿠는 가만히 밖을 바라보다가 손으로 토메사부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풀어헤쳐진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를 지나 손바닥을 스치며 간지러운 느낌을 준다. 이사쿠는 그 느낌에 작게 웃는다. 작게 소리내서 웃는다. 하지만 빗소리에 묻혀 그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아니, 어쩐지 흐느끼는 소리처럼 들린다.

"토메사부로."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걸까, 아니면 빗물이 튀나? 토메사부로의 뺨에 물이 맺힌다. 이사쿠는 조심스럽게 손끝으로 그 물을 닦아내고서 토메사부로를 바라본다. 빗소리는 점점 더 커진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번쩍이는 번개와 시끄러운 천둥까지 불러왔다. 번개가 번쩍일 때마다 토메사부로의 얼굴에 뚜렷한 명암이 표시되었다가 사라진다.

"토메사부로."

세 번째 부름. 이사쿠는 토메사부로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을 멈췄다. 뺨에 떨어지는 물방울을 닦아주는 것도 멈췄다. 그저 천둥소리와 빗소리에 묻어 흐느낀다. 어쩌면 이것은 행운. 다른 이에게 자신의 모습을, 자신이 내는 소리를 들리게 하지 않을 수 있다는 행운. 하지만 이사쿠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토메사부로!"

엄청난 소리와 함께 동굴 바로 앞 나무에 번개가 내리꽂혔다. 이사쿠는 고개를 들어 동굴 밖을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숙여 토메사부로를 바라보았다. 토메사부로는 여전히 눈을 감고있었다. 이사쿠는 토메사부로의 뺨에 맺힌 물방울들을 닦아주고 그를 두 팔로 단단히 끌어안았다. 이것은 분명 불행. 자신이 불러온 불행. 그리고 자신이 옮긴 불행.

"토메사부로."

대답해줘, 토메사부로. 이사쿠는 그의 머리카락 속에 손을 넣어 누르며 말했다.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희미하게 띄고있는 심장소리가, 희미하게 쉬고있는 숨소리가 들리지만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았다. 대답을 듣지 않는다면 곧 끊어질 것 같았다. 이래선 안된다는 것을 알지만 이사쿠는 대답이 듣고싶었다. 그래서 대답이 듣고싶었다.

"토메사부로."

몇 번이고 그의 이름을 다시 부른다. 그가 대답하길 기다리며 그의 이름을 다시 부른다.

비가 내린다. 빗줄기는 굵고 굵어서 맞으면 아플 것만 같았다. 그 사이에 번개가 내리치고, 천둥이 소리친다. 땅은 축축해졌고, 절벽은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것 같다. 아니, 이미 무너져내렸다. 동굴 앞 나무는 번개로 인해 새까맣게 타버렸고, 동굴 안은 차가운 공기만 맴돌았다.

그 사이에서 이사쿠는 토메사부로를 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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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누군가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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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Ne] 현대AU/약(?)수위

2015. 7. 9.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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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Ne] 기분이 좋아

2015. 6. 22. 14:41
기분이 좋아.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햇빛을 가리는 나뭇잎들. 둥지에서 몸을 일으켜 쭈욱 기지개를 피고, 자는 동안 흐트러진 날개깃을 정돈한다. 손으로 가볍게 머리를 정리하고, 날개를 쭉 펴 몇 번 날개짓하면 뻐근했던 몸이 풀리는 기분이 든다. 가볍게 몸을 움직이고, 나가는 길에 나무열매 몇 개를 품에안아 먹는다. 거처에서 나오면 보이는 것은 아직은 조용한 숲. 여기서 조금 더 걸어나가면 초원이 나타난다.

나무열매를 다 먹고, 근처에 있는 강물에 손을 닦고서 가볍게 얼굴도 닦는다. 그 뒤에 날개를 최대한 넓게 펴서 날개짓을 해 날아오른다. 나뭇가지 사이를 벗어나 하늘 높게 날아오르면 오늘도 푸른 하늘이 나를 반긴다. 가만 하늘을 감상하다가 오늘도 그곳으로 향한다. 바람도 그곳으로 향한다. 날개를 쫙 펴고 바람에 몸을 맡기고서 그곳으로, 그곳으로.

"잠, 까안!"

쿵. 갑자기 멈춰버린 바람에 몸을 추스릴 새도 없이 아래로 떨어졌고, 내가 떨어진 바닥은 깊게 패여버렸다. 아아, 또 저질러버렸다. 패인 바닥에 흙을 넣어 매꾸어보지만 이미 뽑혀서 뿌리가 꺾인 풀들은 어찌 할 방법이 없어 흙이 그대로 드러나있다. 금방 다시 자란 풀들이 매꿔주겠지만. 여기에 오는 게 몇 번째인데 아직도 이런 실수를 자주한다. 다행히 다른 이를 깨운것 같진 않다.

"그리덤프씨?"

참방, 물이 튀기는 소리가 나더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 네오를 바라보다가 네오에게 다가가 꼬옥 끌어안는다. 네오는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네오, 네오.

"다치진 않으셨습니까?"

"안 다쳤어."

흙이 좀 묻긴했지만. 떨어져서 흙을 털어내고 가만 네오를 바라봤다. 네오는 그런 날 바라보다가 웃는다. 나도 따라 웃는다. 언제나처럼 반복되는 일상. 난 이 일상이 좋다. 이 일상에 기분이 좋아진다.

"네오."

"예, 그리덤프씨."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나는 이 기분을 계속, 계속. 너와의 만남은 매일매일. 너와의 사랑을 영원히.

"사랑해."

오늘도.

"저도요, 그리덤프씨."

내일도.
언제까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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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누군가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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